“피울까? 말까?” 갈팡질팡 말고 섹스 의미 진지하게 고민하라

몇달 전, 한 번의 기분 좋은 외도 후에 ‘클라미디아 감염’을 얻어 한 차례 치료를 받고 돌아갔던 30대 중반 여성 J는 처음부터 자신의 증상이나 질병의 경중에 대한 관심보다는 자유분방한 자신의 남자선배에 대해 내 견해를 묻기 바빴다.

“그 선배는 사랑이 없어도 어떤 여자랑도 잘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항상 여성에 대한 성적 욕구가 끊이질 않아요. 어쩜 그럴 수가 있지요? 특별히 그렇게 생겨먹은 남자들이 있나요?” 계속 눈을 빛내며 그 남자에 대한 질문을 쏟아낸다.

처음부터 남편 외에 화제의 중심에 선 그 선배와의 잠자리가 있었다는 고백을 하진 않았지만 나도 이 일이 직업인지라 웬만큼 우회적으로 이야길 해도 감이 온다. 소변을 자주 본다고 이야기했지만 내진을 했고 STD(성감염) 검사를 한 후 적절한 항생제 처방을 했다.

일주일 후, 검사 결과 클라미디아가 검출되었고 파트너도 약을 먹어야 할 것 같으니 사실대로 말하라 하니 딱 한 번 문제의 선배와 섹스를 했다고 한다. 바람기가 철철 넘치는 그 카사노바에게 매혹돼 있는 상태인 것 같은데 그 선수가 꽤나 애를 태우는 모양이다. 다행히 외도 후에 남편과는 잠자리가 없었다 하니 그 선수에게 알리고 치료받도록 할 것과 완전히 치료받고 클라미디아가 검출되지 않는 것을 확인할 때까지는 남편과 잠자리를 갖지 않도록 하는 도의적 책임에 대해 설명했다.

과거에는 그래도 어쩌다 하룻밤 실수에 혹시나 남편에게 잘못된 병을 옮기게 될까봐 특별한 증상이 없음에도 별의별 성병검사를 다 받고 혼자 전전긍긍하거나 죄책감에 눈물콧물 흘리는 여성들을 만났다고 하면, 요즘은 별 대수롭지 않게 여기거나 남편과 애인 사이에서 위험한 줄타기를 즐기는 여성들이 더 많은 것 같다. 그만큼 우리 사회가 성에 대해 갖는 가치관이 다양해지고 변화하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일지 모른다. 가족이란 것은 더 이상 성에 대한 배타적 결속력으로 묶인 공동체가 아닐 수 있다면서 결혼제도 자체의 붕괴 가능성을 점치는 전문가들도 있지 않은가.

결혼제도의 붕괴 얘기를 하니 몇 해 전 영화 <바람난 가족>의 다양한 콩가루 관계들이 떠오른다. 그곳에는 전형적인 30대 성공한 변호사 영작이 아내를 두고 바람을 피우고 애인에게 새 남자가 생기자 다시 새로운 여자를 섹스 파트너로 맞는다. 등장인물 중 가장 지속적으로 바람을 피우고 지탄받아 마땅한데 우리는 오히려 이 남자의 바람에는 무덤덤하다. 성공한 남자들은 바람을 마치 그들의 장식품처럼 익숙해한다. 애인과의 섹스는 긴장과 고통을 해소하는 일종의 마약 같은 느낌이다.

시어머니 병한은 병든 남편 때문에 15년 동안이나 섹스를 못하다가 남자 동창생과 바람이 나면서 처음으로 오르가슴을 느끼고, 남편을 묻고 가족과 함께 누운 자리에서 아들 며느리에게 자신의 바람을 당당히 이야기한다. 나로서는 그녀에게 축하한다고 박수라도 쳐주고 싶은 심정이지만, 어쩌면 남편이 죽은 이후의 바람이니까 바람도 아니라 할 수 있는 그녀의 늦바람에 대중은 심기가 불편하다. 대중은 그녀를 한 사람의 여성보다는 한 사람의 어머니로 받아들인다. 어머니는 바람을 피우면 안 된다는 게 사회가 바라는 가치니까.

가장 욕을 듣고 가장 측은하게 여겨졌던 게 영작의 아내 호정의 바람이었다. 시종일관 바람을 피워대던 남편과 그 사이에서 입양된 7살 난 아들 하나를 키우면서 동네 무용학원을 경영하면서 살다가 아이가 죽은 직후 이웃집 고등학생과 섹스를 한다. 호정은 이 섹스 과정에서 절정의 순간에 절규하듯 울음을 터뜨리는데 마치 아들을 잃은 크나큰 고통을 잊기 위한 방편인 듯하여 차마 호정을 비난하고 싶지만은 않았던 슬픈 섹스였다.

섹스에 대해 많은 의미가 덧붙여질 수밖에 없는 것은 섹스는 우리 시대의 중요한 가치인 결혼과 가정, 사랑과 아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우리 자유로이 성을 나누자”라고 외쳐도 여기저기서 반발하고, “평생 한 사람과만 사랑과 성을 나누자”라고 주장하기도 참 멋쩍은 멘트다. 본능의 손을 들어주면 사회질서가 무너지고, 사회질서의 손을 들어 준다면 성은 다시 수면 아래로 숨어들어가 음지에서 활동하게 될 것이다. 이럴 수도 없고 저럴 수도 없는 아슬아슬하고 교묘한 타협이 섹스와 사회 간에 이루어지고 있음이 틀림없다.

미혼 남녀는 미혼 남녀대로 지금의 저 사람과 섹스를 해야 할 것인지 말아야 할 것인지, 이 사람과 몇 번 섹스를 했다고 과연 결혼을 해야 하는지, 성에 굉장히 혼란스러워하고 갈팡질팡 헤맨다. 기혼 남녀는 기혼 남녀대로 배우자가 아닌 상대에게 성적 매력을 느끼며 갈등을 해본 경험이 있을 것으로 짐작한다. 섹스를 할 것인지 말 것인지 그리고 그것이 옳은지 그른지에 대한 고민은 이제 충분하다. 그에 대한 고민은 이제 접어두고 내게 섹스는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잠시 생각해보자.

갈등의 원인은 가치와 행동 사이에 균열이 있어서다. 혼란스러우리만치 다양해지고 있는 섹스에 대해 나는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어떤 태도로 살 것인지 반드시 고민해봐야 할 것이다. 섹스에 대해 지나치게 많은 의미를 덧붙이거나 자기가 수용하기 힘들 정도의 가치를 매기면 혼동과 죄의식에 평생 웅크리고 살아야 할지도 모른다. 섹스를 너무 무의미하게 치부하면 남녀의 매 행위가 의미 없고 허탈감과 후회스러운 결과만 남게 된다.

성에 대한 어떤 태도와 가치를 가질 것인가는 전적으로 자신의 몫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 하나는 문명의 옷을 입고 사는 우리는 아무도 성의 상징적 의미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이다.

<이 기사는 이코노미플러스 12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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